'영원한 고아들의 아버지' 로 불리던 페스탈로치 이야기

[교육정책뉴스 한진리 기자] "왕좌에 있으나 초가(草家)에 있으나 모두 같은 인간이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영원한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며 존경 받는 교육학자인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페스탈로치는 스위스의 교육자이자 자선 사업가로 '근대 교육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당시 유럽 내 불평등한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운동에 동참했는데,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야 하는 것은 '교육'이라고 믿었다. 

당대는 귀족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가난한 이들은 교육 받을 기회마저 박탈 당한 채 가난을 되물림 받을 뿐이었다. 그는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를 바꿔나가고자 '아동 교육'을 위해 젊음을 바쳤다.

출처: google
출처: google

페스탈로치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당시에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던 자연주의, 체험학습, 놀면서 배우는 교육 등을 도입하여 결과물들을 만들어 냈고 이베르돈의 학교를 세워 근대 '초등학교'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그가 이베르돈의 세운 학교는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았고, 실제 물건을 이용한 교육, 체험을 통한 교육을 했다.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게 만드는 교육 방법은 유럽의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페스탈로치는 교사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1808년 '스위스 교육협회'를 만들고 1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 단체는 오늘날 스위스 교원노동조합으로 발전하게 되고, 페스탈로치는 '교원노조의 아버지'라고도 불리게 된다.

출처: google
출처: google

교육의 목적을 '머리와 마음과 손'의 조화로운 발달에 두고, 노동을 통한 교육과 실물(實物)과 직관의 교육을 스스로 실천한 페스탈로치.

그의 교육론은 신교육의 원류로서 헤르바르트와 프뢰벨을 통하여 독일에, 메누드비랑을 통하여 프랑스에, 셀돈을 통하여 미국에 소개되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쓰고 강연을 이어나가던 중 1827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평생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했던 그의 삶을, 묘비명이 담담히 말해준다.

 "모든 것을 남을 위해 바치고, 자기에게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저작권자 © 교육정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