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밀림의 성자' 로 불리는 '슈바이처'의 생애 탐구하기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교육정책뉴스 한진리 기자] “1898년의 어느 청명한 여름날 아침, 나는 문득 이러한 삶의 행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베풀어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그 이후부터는 인류에 직접 봉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로부터 15년 뒤, 이 남성은 의료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행 배에 올랐고 후에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 로 불리게 된다.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

슈바이처는 1875년 독일의 영토였던 알자스 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다른 마을에 갔다가 그 곳에 세워져 있던 아프리카 사람의 석상을 보게 되었다.

1년 내내 더운 아프리카에는 병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슈바이처는, 고개를 숙인 채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석상을 보고 몹시 마음 아파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 날을 기억하고 있던 슈바이처는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인류에 직접 봉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인류를 위해 봉사를 하려면 우선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슈바이처는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헬레네와 결혼하여 1913년에 아프리카로 떠났다.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가봉에서 원주민을 위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병을 고치는 슈바이처를 요술쟁이라고 부르며 먼 곳에서까지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10년, 20년이 지나자 슈바이처의 노력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에 감명을 받은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슈바이처와 함께 봉사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60여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돌본 슈바이처는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오늘날에는 ‘밀림의 성자’ 로 추앙받는 슈바이처이지만 생전에는 예찬 못지않게 비난도 많이 들었다.

의사 자격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그의 병원이며 진료 실력은 수준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과대평가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병원을 방문한 서양인 중 상당수는 우선 빈약한 병원 설비에 놀랐고, 현지인을 향한 슈바이처의 퉁명스러운 말과 행동에 또 한 번 놀랐다.

물론 비판은 가능하다지만, 슈바이처가 현지에서 직면한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할 필요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슈바이처가 오염된 물을 마시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오염된 물을 마시려다 발각된 환자들에게 “이런 야만인들을 치료하겠답시고 아프리카까지 왔다니, 나도 참 어지간한 꼴통이로군!” 이라고 푸념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자 통역자 겸 조수로 일하던 조세프라는 현지인이 이렇게 대꾸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지상에서는 선생님이야말로 대단한 꼴통이죠. 하지만 하늘에서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이러한 우문현답이야말로 슈바이처에게 바칠 수 있는 최상의 찬사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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