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윤동주, 자화상.
1939. 9. 

[사진=종로문화재단 윤동주문학관]
[사진=종로문화재단 윤동주문학관]

[교육정책뉴스 어지영 기자] 시인 윤동주가 잠시 머물렀던 종로구 누상동 산모퉁이를 돌아 자리잡은 문학관이 있다. 윤동주는 당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다. 1956년 국어 교과서에 처음 실린 이후 지속적으로 교육과정에 수록되어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 과거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무한도전X역사 ; 위대한 유산' 프로젝트와 같이 대중적인 미디어에서 윤동주의 시를 주제로 삼기도 했다. 윤동주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모여 종로의 골칫거리 상수도 가압장을 시가 흐르는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 문학관으로 재탄생시켰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1941년 5월 친한 후배 정병욱과 기숙사를 나온다.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전시동원체제로 인하여 기숙사 식단이 부실해지고, 학교의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윤동주와 정병욱은 서울 종로구 누상동 9번지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하였다. 항일 문학가였던 김송이 '요시찰 인물'이 되어 형사가 찾아와 집안을 들쑤셔 하숙집을 떠나야했던 가을까지 윤동주와 정병욱은 4개월 여를 이곳에서 머물며 글을 썼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북간도에서 평양으로 서울로, 서울에서 일본 도쿄, 교토로 떠돌았던 시인의 삶에 남겼을 궤적을 무시할 수 없는 공간이다.

[사진=종로문화재단 윤동주문학관]<br>
[사진=종로문화재단 윤동주문학관]

윤동주 문학관은 장소의 역사성과 스토리텔링이 훌륭하게 결합된 공간이다. 사실 윤동주 문학관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청운아파트라는 철거된 아파트의 상수도 가압장이었다. 윤동주가 실제로 살았던 하숙집과 가까이 있을 뿐, 실제 거주지는 아니다. 문학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도 아니다. 하지만 윤동주 시 속의 '우물'이라는 모티프를 이용하여 윤동주의 시와 삶을 새로운 공간에 엮어냈다. 

수도가압장이란 수돗물을 끌어 올려 물탱크에 가둔 후 압력을 가해 아파트의 수돗물이 잘 나오도록하는 시설이다. 1970년대 지대가 높은 청운동에 지어진 청운 아파트의 부속 시설물이었다. 하지만 아파트가 철거된 후 용도를 잃고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후 이 건물을 '윤동주 시 선양회'가 사용하기는 했지만 낡고 흉물스러워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쳤다. 시간의 흐름이 담겨있는 가압장을 완전히 철거해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종로구는 이를 '윤동주 문학관'으로 조성했다.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는 전시관과 시인을 떠올리는 공감각적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시인의 시 세계와 삶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윤동주 문학관에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윤동주 문학관은 현재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하여 휴관과 개관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종로구 관내 자유학기제 시행학교와 연계하여 문학 교육을 하는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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