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모든 학생이 지니는 탁월성에 주목해야 한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한 후에야 비로소 아들이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은 환경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지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면 꼭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인과관계를 지적한 것은 아니다. 시장 근처로 이사를 했을 때 상인 흉내를 내고 이후에 꼭 상인이 되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물산을 풍부하게 하고 후생을 도모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같으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만한 저명한 학자가 되거나 거부를 손에 거머쥐고 사회를 밝히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맹자는 이미 그럴만한 소질과 기질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의사 근처에 살면서 장사를 치르는 흉내를 냈다는 비유는 당시의 장례업자와 상인들이 사회적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 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다양한 죽음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성과를 더 많이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이에 따라 경제활동인구는 감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급속한 고령화는 노인부양비를 증가시키고 노동인구의 부담을 살인적으로 가중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아간다. 지금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복지비용의 지출이 이루어 져도 체감하는 복지수준은 더욱 나빠질 수도 있다는 예상은 쉽게 가능하다. 따라서 맹자가 살았던 당시와 교육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생각이다. 사농공상의 직업적 귀천이 있었던 유교 문화의 굴레에서 모든 이들의 소망이었던 선비가 되기 위한 다중의 열망을 기초로 삼천지교는 탄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떠한 직업을 가지더라도 존중되어야 하며 미래의 어려운 인구학적 여건을 감안하면 세금을 잘 낼 수 있는 건강한 다수가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학생의 자존감 고양과 직업적 자부심의 고취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고등학교에는 만 16세부터 만 18세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수학이 이루어지며 빠른 경우는 고등학교 졸업 이듬해부터 취업이 이루어져 상당한 기간 동안 구직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과 우리나라의 인구학적 환경을 고려하면 지금과 같은 교육적 환경과 대처로는 다가오는 어려움을 이겨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이념이 인간이 혼자서 살 수가 없는 환경에서 아래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도와야 한다는 공동체주의와 사회적 책임의식이 만나도록 해야 한다.

어떠한 소질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수용이 가능한 것이라면 조장되고 권장되어야 하며 동시에 개인 스스로 자존감을 지닐 수 있도록 보호되고 격려해야 한다. 그가 어디에 살든, 무엇을 좋아하고 하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든 관계 없이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시대의 맹모삼천지교는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출세시키고 말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지상명령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개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주체로서 오롯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사회, 문화적 환경이다. 이는 사람들의 다른 사람 대하는 태도와 방식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서 학교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는 이처럼 사소할 것 같지만 중요한 문화적 코드에 맞닿아 있다고 하면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바른 교육목표와 올바른 인간관계의 문화적 코드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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