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기제의 변천사
언제부터 3월 학기제가 도입됐을까?

[사진 = pixabay]
[사진 = pixabay]

[EPN 교육정책뉴스 왕보경 기자] 한국의 학기제는 수많은 변천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반적인 교육 환경이 급변했다. 전면 대면 수업이던 초·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까지 모두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초·중등학교는 학년별 순차적 등교를 진행하는 등 기존에 볼 수 없던 일들이 교육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벌써 팬데믹과의 공생 2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비대면 수업, 순차적 등교에 익숙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월 22일 2년 만에 전면 등교가 시행됐다. 

전면등교로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처럼 학생들과 교사 모두 긴장감과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3월에 첫 학년, 첫 학기가 시작될까? 9월부터 새 학년이 시작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도 있고 호주, 뉴질랜드, 칠레처럼 2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나라들도 있는데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9월 학기제를 도입한 전력이 있다. 심지어는 4월 학기제를 시행한 적도 있다. 현재 3월 학기제를 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떤 연혁으로 3월 학기제를 도입하게 된 것일까? 해방 이후 한국의 학기제에 대해 알아보자. 

해방 이후, 9월 학기제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9월 학기제를 도입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새로운 통치 체제를 구성했다. 한국의 경제, 정치, 문화, 교육까지 모든 면이 새롭게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4월 학기제는 9월 학기제로, 1년 3학기제로 진행되던 학사 과정은 1년 2학기제로 변화가 있었다. 

첫 학기는 9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진행하고, 2학기는 3월부터 8월까지 진행되는 1년 2학기제로 변경한 것이다. 당시 겨울 방학은 12월과 1월 사이에, 여름방학은 8월에 시행했다.지난 1945년에 발표된 정책으로 인해 그 해 학년이 다음해 8월까지 연장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새로운 교육제도는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시행되는 교육 제도를 따라온 것이라고 밝히며, 나라 사이의 문화 교류에 지장이 없기 하기 위해 쓰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에선 9월 학기제가 '국제적'이고 새롭게 시행되는 교육 정책의 장점 중 하나라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미국의 강력한 주장과 압박이 있었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사진 = pixabay]
[사진 = pixabay]

정부 수립, 학기제의 혼란

3년 간의 미국 통치 이후 정부를 수립한 한국은 교육 체계 전반을 다잡았다. 정책들을 갈무리하는 도중 학기제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9월 학기제를 유지하자는 입장과 4월 학기제를 재도입하자는 입장이 부딪혔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육부라 볼 수 있는 문교부에서는 9월 학기제를 유지하자는 입장이었고, 현직 초등학교·중학교 관련자들은 4월 학기제를 희망했다. 

결국은 4월 학기제 도입이 진행됐다. 졸업과 입학시기, 계절적인 이유에서도 4월 학기제 도입이 시급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회계연도'였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세입과 세출을 구분하기 위해 설정한 일정한 기간을 회계연도라고 하는데 당시 한국의 회계연도는 일제 강점기에 쓰던 그대로 4월 1일부터 다음 해 3월 31일까 지였다. 

학기의 시작을 회계연도에 맞춰 시작해야 하는데 두 일정이 차이가 있다보니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회계연도와 학기제의 시작을 맞추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고 효율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지난 1949년 한국의 학기제는 4월 학기제로 전환을 맞이한다. 

그러나 '6.25 전쟁'이라는 큰 복병이 찾아 온다. 전쟁으로 인해 학교는 문을 닫았고 학생들의 졸업이 미뤄지는 일이나 유급이 불가피 했다.

복잡한 상황 덕분에 또 다시 학기제의 개편이 일어났다. 지난 1950년에 8월을 학년 말로 변경하고 그 이듬 해의 9월을 첫 학기로 하는 9월 학기제가 또다시 실시된 것이다. 2년이 지나고 난 1952년에서야 4월 학기제가 다시 돌아왔다. 

[사진 = pixabay]
[사진 = pixabay]

드디어 '3월 학기제'

'3월 학기제'는 6.25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도입이 됐다. 지난 1956년, 문교부가 대학 첫 학기시작을 3월 1일로 변경하자고 주장했다.

개강 직후는 입학이나 등록 등 각종 사무로 인해 학습에만 전념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학습하기 좋은 계절과 날씨인 4월을 낭비하게 된다는 이유로 한 달 빠른 개강을 주장했다. 

4월부터 원활히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졸업식과 입학식을 비슷한 시기에 할 수 있다는 이유도 추진하는 이유에 포함됐다. 이 뿐만 아니라 국가 회계 연도가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개정된 것도 학기제 개정에 한 몫 했다.대학교의 학사 개정과 더불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학사일정을 변경이 진행됐다. 

장면 내각은 3월 학기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실시했던 4월 학기제가 능률이 떨어지고 효율성이 없다는 이유로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추진 도중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 장면 내각이 무너졌다. 장면 내각의 학기 변경 개정안은 박정희 군사 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사진 = pixabay]
[사진 = pixabay]

새 정부에서도 3월 학기제가 가진 이점을 인정하며 새롭게 학기제를 개편했다. 중, 고등학교는 지난 1961년 12월 30일에 겨울방학을 시작해 이듬해 1월 26일에 개학하는 학기제를 처음 도입했고, 초등학교는 같은 해 2월 1일에 개학해서 한달 후 새 학년에 진급했다. 

길고 긴 과도기를 거쳐 1962년 시작된 '3월 학기제'는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만큼이나 복잡한 과정을 겪으며 정착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교육 환경 속에서 꿋꿋이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어느 시대에나 변함이 없었다. 전쟁과 일제 무단 통치라는 고난 속에서도 교육의 끈을 놓지 않고 자라온 당대의 학생들의 모습은 팬데믹을 마주하고 있는 현재 학생들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저작권자 © 교육정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