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에 방치되었던 프랑스의 철학가 '루소' 의 어린시절 돌아보기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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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뉴스 한진리 기자] '조물주는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했으나,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서 모든 것은 타락했다'

방대한 사상의 정수가 농축되어있다고 평가받는 이 문장은 1762년 출간된 '에밀'(Emile) 의 첫 문장이다.

'에밀'(Emile) 은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철학가, 작가로 대표되는 '장 자크 루소' 의 저서다.
이 책은 당시 유럽의 교육관, 종교관에 전면으로 반하는 사상을 담아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그는 사회 지배계층과 가톨릭 교회 모두를 적으로 돌리며 기나긴 도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루소는 1712년 6월 28일 칼뱅(Jean Calvin)의 개혁 신앙이 지배하던 스위스 제네바(Geneva)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5명의 자녀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시계 제조업자가 되었고, 목사의 딸이자 재능이 많았던 어머니는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을 했기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렇듯 어울리지 않는 부부를 엮어준 것은 지극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루소가 태어난 뒤 열흘 만에 출산 후유증으로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그의 가정은 불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루소가 그의 책 '고백록'(Les Confessions, 1781)에서 밝히듯, 출생 자체가 그에게 닥친 첫 번째 불행이었던 셈이다.

루소의 아버지는 자식교육에 무관심했다. 루소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의 아버지는 콘스탄티노플에 일자리가 있었기에 집안을 돌보지 않았고, 어머니가 세상을 등진 이후에는 자기의 처지를 비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7살 위의 형은 문제아가 되어 사고만 치다가 가출하고, 어릴 때부터 영민했던 루소도 죽은 아내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아버지의 한탄 속에 제대로 된 훈육을 받지 못했다. 가끔 어머니가 남긴 책을 함께 읽기도 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베풀어준 교육은 7살 때 이미 플루타르코스(Plutarchos)에게 흠뻑 빠져 있던 루소에게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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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루소는 이렇다 할 교육을 받지 못했다. 10살이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군인과의 다툼 때문에 제네바를 떠났고, 그는 외삼촌인 베르나르(Gabriel Bernard)의 보살핌을 받았다. 최초에는 보세이(Bossey)에 살던 목사에게 맡겨져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기초적인 라틴어와 허접한 독서만 반복하다 제네바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공증인이나 조각가가 되려는 생각에 여러 견습생 과정을 전전했다. 그러나 리옹(Lyon)에 정착했던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부터 시작된 방황으로 이것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1728년 뜻밖의 계기로 방랑을 결심한다. 나들이를 나왔다가 통금에 걸려 제네바로 들어가지 못하자, 고향을 떠나기로 작심한 것이다.

이렇듯 루소의 어린 시절은 지독한 방치와 고독의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근대 교육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바는 '에밀'(Emile)이 담고 있는 주장들은 너무도 '모순적' 이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자연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는 말에서는 홀로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이겨낸 철학자의 담대함을 읽을 수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충고에서는 그토록 방치된 환경 속에서 어떻게 그가 ‘자기편애’(amour-propre)와 구별된 ‘자기사랑’(amour de soi)의 방식을 깨달았는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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