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일이 학교 밖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을 어찌 할 것인가?

우리는 연일 교육계의 암울한 뉴스 속에서 산다. 이 지경이 되도록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유난히 많이 하는 요즘이다.

며칠 전 인천에서는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기록의 정정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이 한 학부모로부터 제기되었고 이는 학생의 부정적인 측면의 생활기록을 삭제 또는 변경해 달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학부모의 입장은 학생부가 수시 모집의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과 다른 입시 전형에서 중요 자료로 쓰이기 때문에 학생부의 부정적인 내용은 자칫 학생의 꿈을 가로막을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본질은 학생부에 기록된 내용에 관한 문제 제기와 이의 해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종 전형은 이전의 입학전형에 비해 나름 진일보한 전형이고 학교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학생부 기록을 근거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한다는 것은 교사의 평가권을 온전히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의 가장 중요한 변화이며 동시에 교육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학생지도의 일선에 위치한 담임교사와 교과 담임교사 그리고 방과후학교 담당 교사는 학생의 관찰을 통해 학생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기록하고 대학은 입학전형에서 학생부 기록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학생부 기록과 관련하여 기록된 사안이 부정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학생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였으며 교육적인 과정을 통해 사안이 잘 마무리 되었다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다. 반대로 교사의 입장에서는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함으로서 학생부의 신뢰도에 흠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부정적인 내용을 기록함으로서 학생의 미래를 어둡게 할 수도 있다는 학부모의 입장은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지만 학생부 상의 많은 긍정적인 많은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부정적인 내용으로 인해 학생의 모든 성과가 부정 될 수는 없다. 대학도 서류의 심사과정에서 이를 확인하고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이 가지는 잣대와 입장에 따라 학부모의 주장이 옳다고도, 교사의 기록이 정당하다고도 할 것이다. 이러한 논란의 과정에서 교육청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했으니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표명하고 말았다.

학생의 성장과 발달 과정은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온전히 긍정적인 과정으로만 채워지면 좋을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잘못을 범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어떻게 반성하고 성찰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더 나은 인성과 실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교육기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다툼과 분쟁이 이제는 온정주의적인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해결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간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으며 강고했던 각종 권위가 추락한 것이 현실이다. 학교의 중요한 사안들은 이제 모두 적법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온전하게 교육적인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활동의 과정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는 교육자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함에도 현실은 이제 그렇지 않게 된 것이다. 학교의 대부분의 일들은 교사가 피해서도 또 피할 수도 없는 과업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수요자들의 요구는 시대 변화에 따라 다변화하고 학교와 교사의 업무에 대한 관심은 과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은 종종 있어왔다.

사법적인 판단을 통해서 교육적 사안이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교육을 둘러싼 주체간의 이견으로 인해 학교 밖에서 해결 되어야 하는 현실은 교권이 그간 얼마나 무너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번 소송이 종료되면 학생부 기록의 과정과 문제제기의 내용 중 일방은 잘못으로 가려지고 시간이 가면 잊혀 질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너무나 중대하다. 설사 교사가 과도한 재량권의 행사라고 하는 결론이 도출된다고 해도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을 학교 밖으로 인도한 교육 당국의 미온적 태도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이로 인해 교육계가 받는 상처에 관해 교육당국은 아예 고려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문제가 해결되고 앞으로 이에 관한 더 자세한 기준이 생긴다 해도 이것을 성과라고 치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댓가를 너무 비싸게 치른 탓일 것이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여느 사회적 관계와 달리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중요한 과업을 전제로 한다.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과 바람을 달리 표현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간절한 소망으로 가득한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학생과 교사의 미시적 관계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이며 민법상 중요한 원칙인 성실신의의 원칙이 그 근저에 강고하게 자리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가 지침과 규정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며 당연한 것이다. 동시에 교사는 교육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반영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교육과정이 학교에서 제시한 교과 교육과정 말고도 학생의 소질과 적성 그리고 요구를 수용하는 각종 활동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부모도 학교와 교사의 교육권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배려와 고려가 있어야 한다. 내 아이의 미래도 중요하지만 교사는 다수의 학생들을 지도해야 한다. 한 학생에 대한 특별한 대접은 심한 경우에는 학교와 교사 자신을 무너지게 하고 결국 교육력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익적 차원의 이해가 절실하다.

교육이 세태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래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있다. 법과 규칙은 사회적 관계를 규율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에 그쳐야 한다. 특히 교육은 그 본질에 있어서 규칙과 법이 절대로 관여 할 수 없는 정의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으며 법과 규칙이 해결 할 수 없는 위무와 고양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이입적 연대감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모두가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유일무이한 문제해결의 원칙이라고 하거나, 그 범위 안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간 교육은 규격화된 우리 속에 갖히게 되는 것이다. 교권은 학생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며 교사의 수업권도 학생이 있으므로 가능한 것이다. 또한 학생은 자신이 지니는 학습권의 실현을 위해 매일 등교하여 배우고 익히는 수고를 감수한다는 것을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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