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사고
임시방편식 규제 아닌 현장 관리·감독할 사람 충원해야

[EPN 교육정책뉴스 한진리 기자] 직업계고 현장 실습 학생들의 사고가 반복되면서 교육부가 내놓는 개선안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 마리나에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장 실습생의 죽음 

지난 10월 6일 전남 여수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정운군이 사고로 숨졌다. 

홍군은 직업계고 현장실습의 일환으로 요트업체에서 실습을 진행했다. 그리고 현행법상 미성년자에게 금지된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잠수 작업을 하다 숨졌다. 

당시 현장에서는 2인 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학교는 실습 운영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하지 않았고 실습 일지도 관리하지 않았다. 홍군의 표준협약서에는 잠수 작업에 대한 명시가 없었음에도 작업은 진행됐고, 안전관리자도 없었다. 

안전 관리자는 경찰에 "홍군이 작업을 하던 중 잠수장비가 헐거워 다시 결착하려고 공기통을 풀었으나 웨이트벨트를 풀지 못해 수중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고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즉 홍군은 제도적 보호에서 벗어나 철저히 혼자 작업을 수행했던 것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사진=연합뉴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사진=연합뉴스

2017년 규제 강화→2019년 완화 
올해 사고 발생하자 다시 규제 조여 

정부는 홍군이 숨진지 79일 만에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지난 23일 교육부는 현장실습 전에 이뤄지는 실사 과정에 노무사가 직접 참여하고 현장실습생들이 부당한 업무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명문화하는 내용의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앞서 교육부는 2017년 현장실습생 이민호군이 제주의 한 음료회사에서 실습을 하던 중 숨지자 '선도기업' 중심의 현장실습만 허용하는 것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그러다 1년 만인 2019년 선도기업이 아닌 '참여기업'(노무사의 현장 실사 없이 학교 측 운영위 심의만으로 선정된 기업)도 실습생을 받도록 스리슬쩍 다시 완화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6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교육부가 발표한 학습중심 현장실습 개선방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전교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6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교육부가 발표한 학습중심 현장실습 개선방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전교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 26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3일 교육부가 발표한 '안전·권익 확보를 위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방안'에 대해 "최소한의 안전조처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업의 현장실습 기업 선정 기준이 한없이 낮은데 고용부의 감독 기능을 추가한들 사고를 예방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전교조의 지적처럼 참여기업은 노무사가 동행한 현장실사 절차가 없고, 학교 교사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가 선정한다. 기업 규모 제한도 없어 홍군이 다닌 업체처럼 영세한 1인 업체도 선정될 수 있다.  

영세한 규모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제대로 된 기준과 절차의 부재다. 노무사가 동행한 시찰과 엄격한 기준으로 기업이 선정되지 않다보니 실습 환경 및 안전 규칙 미준수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두산중공업
두산중공업 창원 공장에서 실습 교육을 받고 있는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학생들. 사진=두산중공업

'을'의 위치에서 숨죽인 현장 실습생들

실습생들의 어려움을 피드백 해줄 창구의 부재도 고통을 키운다.  

A특성화고 재학생 최모양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장실습을 다녀왔는데, 학생들은 어른의 요청을 거절할 힘이 없다"라며 "어른들이 교육을 받아서 학생에게 시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홍정운과 같은 학교 친구인 차모양은 "학교에서 '거부해도 된다'고 배우고 가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면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절하거나 거부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과 연결되기 때문에 거부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도 있다"고 말했다.

C특성화고 재학생 황모양은 "제가 현장실습하고 있는 곳은 이미 계신 직원분과 실습생의 업무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강도도 차이가 없다"며 "선생님께 어려움을 말씀드렸지만 뚜렷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실습생들의 증언처럼, 교사에게 어려움을 호소해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은 불합리한 상황에 맞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배우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면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서 숨죽여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습 도중 발생하는 학생들의 어려움을 공적인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관리자의 투입이다. 

[산업체 현장에서 실습하는 학생. 사진=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체 현장에서 실습하는 학생. 사진=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제대로 감독할 '사람'이 필요하다

결국 교육부가 손대야 할 것은 매뉴얼이 아니다.

한 특성화고 교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매뉴얼대로 하면 아주 안전하게 실습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제는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매뉴얼 내용을 감독하고 지도할 사람이 부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이상 유명무실한 매뉴얼을 반복적으로 읊는 차원의 관리·감독 행태는 근절되어야 한다. 누구도 자신을 감시하지 않은 환경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힘없는 실습생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환경을 '감독'할 사람이다.  

실습에 참여하는 기업에 주는 보조금을 늘리기 보다, 전문 노무사를 채용하고 주기적인 관리·감독과 보고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유 부총리는 현장실습 개선안을 발표하며 "말로만 대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가동되는 대책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권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 유 부총리는 자신이 했던 말이 의미없이 공중에 흩뿌려지 않도록 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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